LOT 111
Kim Yong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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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首雲 金龍洙, 1901 - 1934)
Landscape
ink and light color on silk
154×30cm
Estimate
KRW 1,500,000~3,000,000
WORK INFORMATION
signed and sealed on the upper right
Framed
수운 김용수는 1920년대에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여준 화가이다.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그가 이룬 성과에 비해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신남화풍(新南畵風)의 도입과 관련하여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가 활동한 1920년대는 동연사(同硏社)의 멤버인 청전 이상범, 심산 노수현, 묵로 이용우, 소정 변관식이 전통산수의 틀에 벗어나 동양화단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동연사의 화가들은 조선미술전람회(이후 선전)에 사경산수화풍(寫景山水畵風)의 작품을 선보이는 등 종래의 화단과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수운 또한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23년 선전에 수묵사경풍의 작품을 출품하며 조선 화단에 자리하게 된다.
수운 김용수에 대한 기록은 1923년 4월 2일자 『매일신보(每日申報)』에서 확인되는데, 그가 동경에 있던 시절 진행된 인터뷰이다. 22세의 전도유망한 청년으로서 초상사진과 작품이 함께 신문에 실리며 ‘조선화계의 혁명아, 또 기린아’로 대서특필된다. 더하여 ‘유명한 남화(南畵)를 조선미술사상에 신기록을 삼고자, 남화에서 발현된 동양화를 연구한 김용수가 원래는 서울에 있는 서화미술회의 안중식(安中植, 1861-1919)에게 그림을 배웠고, 1922년 도일(渡日)하여 일본 남화계의 중진이었던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 1874-1945]을 사사했다.’고 밝히고 있다.
참고도판 1. 「조선화계의 혁명아, 또 기린아인 김수운씨」, 『每日申報』, 1923년 4월 2일
스승 고무로 스이운이 1923년 동양화부의 심사원으로 조선을 방문했을 당시 수운 또한 조선으로 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밝혀진 수운의 작품은 일본 유학을 통해 신남화를 직접적으로 수용한 양식을 보이는 것이 다수이다. 전통적인 준법의 사용을 탈피하고 먹과 색채의 농담으로 공간을 표현하며, 주로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산수를 그리고 있다. 출품작 은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의 한 장면을 그린 것으로 앞서 밝혀진 수운의 신남화풍과는 차이를 두고 있어 수운의 작품 세계를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김소연, 「首雲 金龍洙와 한국 근대 신남화풍 도입」, 『미술사논단』제25호, 한국미술연구소, 2007